모든 부모는 자녀들이 잘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훈육을하죠. 그런데 자녀 입장에선 그 훈육이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고, 때에 따라서는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훈육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우리에게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 아버지는 세상에 있는 부모님보다 더 완벽하시고 완전하시고 멋진 분이십니다.
이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누리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성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세상을 누리는 것'에 대해 크게 오해를 하게 했습니다.
'세상을 누리는 것'이 마치 내가 원하는대로 사는 '자유'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유'를 외치면서 '이기적인 모습'들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자유'를 외치면서 '편을 나누기 시작했고', '자유'를 외치면서 '전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때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죽음'을 막기 위해 이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2000년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을 주셔서 이 말씀을 통해 아버지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안전하게 알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2 말씀을 통해 우리로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내 마음에 원하는대로 살지 말고 세상을 '분별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로마서 12:1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삶'을 '예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예배의 삶'을 드리는 일은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때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너희가 이땅에 살면서 나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기 원한다면 너희 몸을 나에게 맡겨라. 내가 최고로 멋지게 사용하여 너를 너가 알지 못했던 참 자유를 누리게 할 것이고, 상상할 수 없을만큼 복되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드릴 수 있을까요?
'몸을 드리다'를 한자로 보면, '드릴 헌, 몸 신' '헌신'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단하는 것이 로마서에 나오는 '하나님께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흔히 생각할 때, '헌신'하면 일요일에 교회에서 일하시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도 맞지만 그정도가 아니라 '헌신'은 '결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일 연합 예배에서 찬양할때, 기도할때, 말씀들을때, 성도들과의 교제 가운데 받은 감동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닌 삶에 적용하며 살 것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헌신'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헌신'은 나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참자유', '참기쁨', '참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한주도 주님으로부터 받은 마음을 '결단'함으로 '헌신'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천국의 기쁨 메신져, 여러분의 목사 허민~